필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는 꽃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열까 말까 망설이며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쌀쌀하고도 어여쁜 3월의 바람

바람과 함께

나도 다시 일어서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

 

 

 

경칩이 지나고 나니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이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살구꽃나무 위로 새들이 즐겁게 날아다니고 꽃들 주변으로 흰 나비들이 찾아오는데 꽃과 나비를 보는 제 마음도 요즘은 웃음기 없이 울적하기만 합니다. 평소에 나물 캐기 좋아하는 어느 선배수녀님이 수녀원 밭에서 뜯어 온 냉이로 국을 끓여 먹고 쑥으로 튀김을 해서 먹으며 식탁에도 이렇게 봄이 올라와 있는데 계절의 봄과 달리 우리의 진정한 봄은 언제나 올까요?” “요즘은 신문 보기도 겁이 나요.”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할 건데 걱정만 앞서고 일이 손에 안 잡히네요.”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 때문에 마음까지 멀어지면 곤란한데?” “너무도 당연히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을 이젠 기적처럼 그리워하게 되는군요.”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국민이 좀 더 성숙하고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수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건넵니다.

 

우울한 시기를 잘 극복하라고 맛있는 쑥찰떡을 150인분이나 만들어 보낸 해운대의 문인, 마스크 몇 개 경비실에 두고 간다며 문자를 보내온 우리 동네 빵집 사장님께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평일미사에도 객실에도 일체 외부인이 오질 않으니 수녀원이 세상과 격리된 하나의 외딴 섬이 된 것 같습니다. 가끔 만나서 책방도 가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해주던 예쁜 독자의 딸이 확진판정을 받고 의료원에 있다니 걱정입니다. 성당에서의 공동기도지향에도 식당에서의 독서시간에도 온통 코로나19 관련 소식뿐인데 원장수녀는 거의 매일 이런저런 공지를 해 줍니다. 홀로 어르신들께 드릴 반찬 준비를 비롯해 구청 보건소 직원들에게 드릴 편지와 간식준비에 대한 것 등등. 여러 종류의 부탁과 협조를 구해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다 함께 절감하는 것 중 하나는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를 돌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 말은 따뜻하게 행동은 성실하게 공동선을 향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몫을 다 할 때만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지 않으면서 곧잘 짜증과 푸념으로 우울을 전염시키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이 고난의 시기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으로 일어서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3월의 연둣빛 바람이 재촉하는 속삭임을 들으며 가만히 두 손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