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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1.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예수님,
성모 승천 대축일인 어제 오후에 저는 체포되었습니다.
사이공에서부터 나트랑까지 450킬로미터의 거리를 경찰관 두 사람의 호송을 받으며 밤중에 여행을 하는 동안 저는 죄수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슬픔과 공포, 긴장 등의 수많은 착잡한 느낌들이 저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고 저의 백성들로부터 멀리 격리된 제 가슴은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굴욕을 느낀 제 마음속에 자연스레 성서 구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악인들 중의 하나로 몰렸다.”(루카 22,37) 차에 탄 채로 제게 맡겨진 세 교구, 사이공·판티엣·나트랑을 지나가고 있는 제 마음엔 저의 신자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목자인 제가 십자가의 길 제1처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전 한 닢조차 없는 제게는 다만 묵주가 있고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동반하실 뿐입니다.
감옥으로 가면서 저는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시고 저의 모든 것이십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이제야 저는 성 바오로와 함께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나 프란치스코.”(에페 4,1 참조)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밤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걱정과 악몽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저는 조금씩 조금씩 다시 깨어나 저의 진실을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지금 나는 감옥에 있습니다.

내가 갇혀 있던 푸칸의 감방은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지독히 더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져서 의식 불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때는 전등불이 밤낮으로 켜져 있고 어떤 때는 언제나 어두웠습니다. 방안의 공기가 너무 습해서 버섯들이 침대 위에서 자랐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나는 벽 밑에 뚫린 구멍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그것은 물이 빠져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를 그 구멍에 대고 숨을 쉬면서 맨땅 위에서 100일을 보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찼고, 작은 벌레들 - 작은 거미들, 지렁이들, 노래기들이 밖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쫓아버릴 힘이 없었기 때문에 감방 안으로 들어오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단 두 사람의 경비병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정신이상 직전의 상태에서 절대적인 공허 가운데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채, 관절염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아침부터 밤 9시 반까지 걷기를 계속해야 했던 9년간의 독방 생활은 정신적인 고문이었습니다.

 

8년 동안 주교로 일해왔으며 제법 많은 사목 경험을 쌓은 내가 나의 백성들로부터 1700킬로미터나 떨어져 무기력하게 격리되어 있다니!

나는 성숙의 나이인 48세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유혹을 당했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재촉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고 있느냐? 너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을 식별해야 한다.

네가 해온 모든 일과 계속해서 행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들, 사목 방문, 신학생과 남녀 수도자와 평신도들 그리고 젊은이들의 양성, 학교의 설립, 학생들을 위한 휴게실, 비그리스도인을 복음화하기 위한 사명… 이 모든 것들은 훌륭한 일이고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느님은 아닌 것이다! 만일 하느님께서 네가 이 모든 일들을 그분의 손에 맡기고 포기하기를 원하신다면 즉시 그렇게 행하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너보다 무한히 더 잘 행하실 수 있다. 그분은 너보다 훨씬 더 유능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일들을 맡기실 것이다. 네가 택한 것은 하느님일 뿐이지 그분의 일은 아니다!”

 

이 음성은 나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힘을 가져다 주었고 육체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순간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 아닌 하느님을 택한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내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함께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의 절망과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표정을 보면서 내가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는 이 순간 이곳이 “하느님의 일이 아닌 하느님을 택하라.”는 음성이 가리킨곳 이었습니다. 나는 “주님, 참으로 이곳이 저의 주교좌 성당이고 이들이야말로 저더러 돌보라고 맡겨주신 당신의 백성들입니다. 저는 절망에 빠져 참담한 상태에 있는 형제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뜻이며 또한 저의 선택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굶주림과 추위, 심신을 지치게 만드는 사역, 굴욕과 불의 가운데 있는 저의 형제들 중에서 당신의 사랑이 되라고 저를 이곳에 파견하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택하고 당신의 뜻을 택합니다. 저는 이곳에 파견된 당신의 선교사입니다.”
그 순간부터 새로운 평화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히고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생애는 쓸모없는 좌절이요 실패였으나 하느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을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설교도, 병자의 치유도, 방문도, 기적도 더 이상 행할 수 없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절대 부동의 상태에 머물러 계시면서 예수께서 하느님과 결합하셨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 쿠엔 반 투엔 -

 

 

 

묵상2. 이상한 법칙

 

자신을 괴롭히는 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지요. 모든 욕망에는 마음을 비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죽음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자유의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며, 파도 밑으로 가라앉으며 오히려 편안함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두 가지 근원적인 법칙이 있는 듯합니다. 한 가지는 두려움의 법칙으로 우리를 불신으로 이끌고, 또 한 가지는 사랑의 법칙으로 우리로 하여금 버리고, 베풀고,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신뢰하고, 창조하고, 치유하고, 마음을 비우고, 놀라움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칙은 우리에게 이상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버린 모든 것들이 결국엔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오며, 우리의 사랑이 더욱 커지게 만든다는 진리입니다. 그것은 바로, 살아서 우리가 버렸던 것만을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다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예술가가 살고 있다.

 

                                                 - 잘랄루딘 루미 -

 

 

 

묵상3. 십자가상의 주님 (시편 22,1-32)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 좌정하신 분. 저희 선조들은 당신을 신뢰하였습니다. 신뢰하였기에 당신께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고 당신을 신뢰하여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 저를 보는 자마다 저를 비웃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주님께 맡겼으니 그분께서 그자를 구하시겠지. 그분 마음에 드니 그분께서 구해 내시겠지.”

 

그러나 당신은 저를 어머니 배 속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 젖가슴에 저를 평화로이 안겨 주신 분. 저는 모태에서부터 당신께 맡겨졌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제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환난이 다가오는데 도와줄 이 없습니다.
수많은 수소들이 저를 에워싸고 바산의 황소들이 저를 둘러싸 약탈하고 포효하는 사자처럼 저를 향하여 입을 벌립니다. 저는 물처럼 엎질러지고 제 뼈는 다 어그러졌으며 제 마음은 밀초같이 되어 속에서 녹아내립니다.

 

저의 힘은 옹기 조각처럼 마르고 저의 혀는 입속에 들러붙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죽음의 흙에 앉히셨습니다.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저를 둘러싸 제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제 뼈는 낱낱이 셀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저를 보며 좋아라 합니다.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생명을 칼에서, 저의 목숨을 개들의 발에서 구하소서. 사자의 입에서, 들소들의 뿔에서 저를 살려 내소서. 당신께서는 저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께서는 가련한 이의 가엾음을 업신여기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시고 그에게서 당신 얼굴을 감추지도 않으시며 그가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들어 주신다.
큰 모임에서 드리는 나의 찬양도 그분에게서 오는 것이니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을 채우리라.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그분을 찾는 이들은 주님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세상 끝이 모두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민족들의 모든 가문이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주님께 왕권이 있고 민족들의 지배자시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권세가들이 오직 그분께 경배하고 흙으로 내려가는 모든 이들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내 영혼은 그분을 위하여 살고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장차 올 세대에게 주님의 이야기가 전해져 그들은 태어날 백성에게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리니 주님께서 이를 행하셨기 때문이다.

 

 

 

기도. 십자가에서 계시하는 구원

 

주님, 우리의 기도가 당신의 기도에,
게쎄마니에서와 십자가상에서 올리신 당신의 기도에
합쳐지게 하시고,
십자가 발치에서 드리신 성모님의 기도에
합쳐지게 하시며,
당신께 일신을 맡기고
하느님의 자비로 자기 인생이 구원받았음을 깨달은
강도의 기도에 합쳐지게 하소서.

 

이 기도는 우리의 기도만이 아니고
전 교회를 위하는 기도이며,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이들을 위하는 기도이고,
자기 인생에서 구원의 표를 발견코자 애쓰는 사람들
전부를 위한 기도이나이다.
우리로 하여금 누구에게나
도움과 격려와 비추임이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어,
십자가상의 저 강도처럼,
만인으로 하여금 사랑받고 이해받고 용서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돕게 하소서.
십자가 곁에서 성모님이 겪으신 신비로운 모성에
참여케 하여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 M.마르티니 -

 

 

"거기 너 있었나"

 

 

 

KAMAT MARIAM (마리아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