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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Holy Night – Lib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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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 OF JESUS

 

 

 

 

 

묵 상 1   복되도다 믿으신 분 - M. 까를로 까레또

 

 

원죄 없으신 성모 축일을 지내고 나는 사하라의 아름다운 오아시스 베니아베스를 찾아갔다. 성탄절을 고적한 데서 지내기로 마음먹고 우아루루 샘터를 골랐다. 따뜻하고 깨끗한 모래언덕이 있고, 물이 많은 샘터 곁에 자그마한  천연동굴이 있어 소성당으로 삼기로 하였다. 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데다 고적을 만끽 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날씨가 바뀌어 어두운 쟃빛이 하늘을 덮어버렸다. 폭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내가 피신할 데라곤 동굴밖에 없었으며 그곳에 들어앉아 몇날을 조용히 지내려니 하였다.

 

내가 동굴에서 기도를 하고 있노라니 알리가 난데없이 뛰어들어 소리쳤다. “빨리오세요. 까를로 수사님, 빨리요. 양들을 모래밭에서 잃었어요… 도와주셔요!” 나는 자동차로 달려가 아이를 태우고 사막으로 내달았다. 바람과 모래가 맞불어와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 아수라장에서 양떼를 찾기는 수월치 않았다.

 

겁을 먹은 양들이 여기저기 몰려 다니며 돌풍과 마악 쏟아지는 빗속을 헤매고 있었다. 사막에서는 죽음과 삶이 지척간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양들을 한 마리씩 부둥켜안아서 차에 태워 동굴로 실어왔다. 숨을 훅훅 막히게 하는 모래 폭풍 속에서 피할 데라곤 거기 밖에 없었다. 양들도 나처럼 흠뻑 젖어 어둠 속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조그만 동굴은 양들의 우는 소리, 양털과 가축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로 가득 찼다.

 

성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양떼와 양들의 똥오줌이 질퍽한 동굴 안에서… 목동과 더불어… 밖에는 폭풍이 휩쓸고 있었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양들은 자리가 있는 대로 자리잡고 누웠고 동굴은 너무도 조용했다.

나는 감실에서 성체를 꺼내서 목에 거는 작은 성합에 넣었다.

루가복음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들이 베틀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루가 2,6-7)

 

나는 침묵을 지키며 기도하였다. 마리아께 기도드리는데 그녀가 무척 가까이 느껴졌다. 목에 건 성합 속에 모셔진 성체가 빵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려 주었다. 베틀레헴, “빵의 집”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지금 이 동굴과 같은 곳에서 탄생하셨다.

 

꿈을 꾸고 있었을까? 깨어 있었을까? 꿈과 생시 둘 다였는지 모르겠다.

꿈과 현실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느님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 꿈이 아니겠는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음을 믿는 그것 자체가 사람에게는 더없는 꿈이다. 그 꿈은 땅을 하늘에 화합시키려는 소망이었고 이 소망이 성탄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성탄,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하느님의 오심이 인간의 꿈을 앞지른 것이었다.

그 누구도 이처럼 멋있고 기상천외한 일을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마리아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누구보다 몸소 겪으신 일이신데… 그런 아들을 두리라고 꿈에나 생각하셨던가요? 마리아여, 정말 같던가요? 그런 아드님을 몸으로 낳는 일은 신앙으로 낳는 고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애기를 본다는 건 어렵잖지요. 마리아, 당신의 아기라면 말이예요. 그러나 그 아기가, 한 쪽 구석에 대야에 대고 쉬야를 시키는 그 아기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믿기는 수월치 않을 것입니다.

 

난 지금 이 망토 밑에 바로 목에 성합을 걸고 있습니다. 성체를 모신 작은 감실입니다. 교회의 믿음에 의해 축성한 빵조각입니다. 사랑하지요. 또 흠숭합니다. 그러나… 믿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안 그렇던가요, 마리아?

믿고 바라고 사랑하기만큼 힘든 일이 이 땅에 없습니다. 당신은 잘 아시지요. 그러니 사촌언니 엘리사벳의 말이 옳았지요,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정말입니다. 믿으셨으니 정녕 복이 있으십니다.

내 믿음을 붙들어 주시니 복되십니다.

성탄의 신비를 무턱대고 받아들일 담력이 있으셨으니 복되십니다.

 

예로부터 전지전능하신 야훼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지만,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은 이 밤에 범접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그분의 지존과 위엄과 두려움이 어린아기에 대한 사랑스러움으로 바뀐 것이다. 저 동굴 안, 구유에 누워있는 갓난아기가 하느님이시라면 두렵지 않다. 나도 마리아 곁으로 다가가 속삭여 본다.

 

나의 아기여. 나의 하느님이시여.

내 품에 안겨있는 보드라운 살을 드러낸 이 아기를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으랴… 하느님은 두렵지 않다. 두렵지 않다. 두려움을 모르는 평화가 드디어 내게 찾아 왔다. 천당이 내 곁으로 내려온 것이다. 한없는 평안이 내게 깃들어 왔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믿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으로 끊임없이 내안에 예수 아기를 낳는 것이다.

 

마리아, 당신처럼 그 아기가 하느님이심을 믿습니다.

당신의 자식임을 믿습니다. 그 아기에게 경배합니다.

내 망토 밑의 작은 성합 속에 계시는 그분의 현존 앞에서 경배드립니다.

마리아, 베틀레헴에서부터 당신이 헤아릴 수 없이 뇌이신 말씀이 들려옵니다.

“내 아기, 나의 하느님”

나도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간직합니다. “내 아기, 나의 하느님”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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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child is this - piano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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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a child is born

 

 

 

 

 

묵 상 2   영혼 속에 신의 탄생

 

 

탄생을 뜻하는 성탄은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의 축제입니다.

어린이를 어른처럼 키우려 하는 이 시대에 어린이가 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지만, 복음은 상식을 따르지 않고 어려운 일들을 단순하게 변화시킬 줄 아는 어린이와 같이 되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1-)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어린이처럼 하늘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르 10,15)

 

어린이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의 모범이며 더 큰 삶의 초대를 향해 아무런 내적 방해를 받음이 없이, 믿는 가운데 자신을 여는 존재입니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자유를 되찾는 것이며, 하느님과 인생의 신비에 대한 개방을 의미합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요한 4,3-)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요한 4,6-)

 

어린이처럼 되라는 예수님의 권고는 하느님을 향한 조건없는 신뢰라는 모험을 요구합니다. 어린이가 된다는 것은 내적인 방향전환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영으로 태어남이며 위에서 남이며 새로 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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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타울러는 성탄절 설교에서 ‘영혼 속에 신의 탄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이사 9,5)

 

오늘 우리는 세 가지 탄생을 기념합니다.

첫째 탄생은, 하늘의 아버지가 그 외아들을 낳은 탄생입니다.

둘째 탄생은, 순결한 동정녀인 어머니가 그 아들을 낳은 탄생입니다.

셋째 탄생은,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선한 영혼 속에 신이 태어나는 탄생입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라는 이 말은 신이 언제나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 영혼 속에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영혼 속에 신의 탄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되돌아옴’이 필요합니다.

‘밖으로 나감’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옴’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모든 원의願意, 자신의 모든 업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 속에 신의 탄생’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영혼의 깊은 곳을 비우고 나면 신은 그것을 전적으로, 철저히 채워 줍니다. 신은 그것을 결코 빈 채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신이 그녀를 통해서 육체적으로 태어난 사실보다도, 신이 그녀의 영혼 속에 정신적으로 태어난 사실을 더 행복하게 여겼다.” - 아우구스티누스 -

 

마리아는 처녀였고 약혼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혼 속에 신의 탄생을 원하는 사람은 마리아를 본받아야 합니다.

 

첫째, 영혼은 ‘순결한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영혼은 처녀로서 밖으로는 아무런 열매가 없다 할지라도 안으로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 열매가 바로 ‘신 자신’이며 ‘신의 아들’입니다.

 

둘째, 마리아는 약혼한 처녀였습니다. 따라서 처녀로서의 영혼은 약혼한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네 원의를 오직 신적인 것으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

 

셋째, 마리아는 자신 속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혼 속에 신의 탄생을 원하는 사람은 모든 외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떠나 자기 속에 고요한 자리와 내적인 안식처를 마련해야 합니다.

 

 

 

 

 

기도 성탄은 어머니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분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하늘나라의 법은 어린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님,

이번 성탄이 저희에게 참뜻을 지니도록

당신 품에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성모 마리아님,

아기를 바라보며 저희 모두를 소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은 처음으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바라보았나이다.

저희도 당신과 함께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바라보는 특권을

누리고 싶어 당신께 간구합니다.

저희 영혼 깊은 곳에 당신을 향한 눈길과 그분의 눈길에 대한

갈망으로 언제나 말씀 안에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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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night - 4-year-old girl